사진관 전성시대 전시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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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 전성시대
· 전시기간 2025-05-14 - 2025-07-27
· 전시장소본관 기획전시실Ⅱ
  • 전시명: 생활문화 조사 연계 특별전《사진관 전성시대》
  • 전시장소: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
  • 전시기간: 2025년 5월 14일(수) ~ 2025년 7월 27일(일)
  • 전시내용: 일생의례의 기념과 일상을 기록해온 사진관의 변화
  • 전시자료: 사진관의 사진기와 물건, 일생의 순간을 담은 사진 등 200여 점
  • 전시구성
    1부. 사진관 변화
    1-1. 등장과 확산
    1-2. 컬러와 디지털
    2부. 사진관 전성시대
    2-1. 빛으로 그림
    2-2. 작업의 기술
    에필로그

전시개요

사람들은 신분을 증명하는 사진뿐만 아니라 생애의 뜻깊은 순간을 남기려고 사진관을 찾곤 했습니다. 사진관에서는 아기의 백일 사진이나 돌 사진부터 약혼, 결혼사진은 물론 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영정 사진까지 우리 삶의 의미 있는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가족과 세대의 이야기를 전하며 그 시간과 기억을 고스란히 기록한 사진관은 우리 삶과 맞닿아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사진관 전성시대>는 국립민속박물관 사진관 조사 사업과 연계하여 사진관의 변화상과 그 의미를 돌아보는 자리입니다. 동네 사진관의 사진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진관의 어제와 오늘을 담았습니다. 사진관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과 찍힌 사람의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사진으로 일생의 순간을 기록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기록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가까운 과거의 생활문화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며 사진관도 변화했고, 정겨운 동네 사진관은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모습과 일상을 남기려 하는 소망을 사진에 담습니다. 어쩌면 오늘도 누군가는 그 순간을 특별하게 기록하려고 사진관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사진 한 장에 담긴 추억, 그 기억을 찾아 오래된 앨범을 함께 펼쳐보시기를 바랍니다.
프롤로그 전시장 모습

사진관 전성시대 전시실 입구



1부  사진관 변화


사진관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고 추억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던 그 시절,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필름에 담긴 내 모습이 사진에는 어떻게 나올지 기대하며 사진관을 찾았으니까요. 스튜디오이자 사진 현상소로 동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사진관은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시작된 후, 그 수가 점차 줄었습니다. 일상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흔히 사용하는 지금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사진관을 찾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1부-1. 등장과 확산

외국과 본격적으로 교류하면서 사진 기술이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1880년대 초반에는 일본인 사진사들이 사진관을 열었고, 1907년 천연당사진관이 개관한 이후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진관도 늘어났습니다. 황실과 소수 계층에서만 이용하던 사진관을 점차 일반 사람들도 이용하게 되었으며, 사진을 신원 확인 도구로 활용하게 되면서 사진관이 더 많아졌습니다.

등장과 확산 전시장 모습

1부-2. 컬러와 디지털

사진 기술의 발전은 사진 문화와 사진관의 역할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흑백에서 컬러로 변하면서 현상소의 역할이 커졌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면서 사진관 운영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디지털카메라로 현상과 인화 과정 없이 사진을 저장하거나 출력할 수 있어, 누구나 쉽게 일상을 기록하고 확인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전통적인 사진관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컬러와 디지털 전시장 모습


2부  사진관 전성시대

1960~1990년대 동네 사진관은 인기가 많았습니다. 오일장이 열릴 때면 사진관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서울의 유원지나 외국의 풍경이 그려진 배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백일, 돌, 환갑처럼 중요한 순간마다 사진관을 찾았습니다. 동네 사진관은 오랜 기간 사람들의 모습과 추억을 담아낸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2부-1. 빛으로 그림

사진사는 빛의 방향과 강도, 인물의 표정과 자세를 세밀하게 조정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인물의 중요한 순간을 포착하고, 빛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그 사진에는 사진사가 놓치지 않고 찍은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빛으로 그림

2부-2. 작업의 기술

사진사는 사진을 현상하고 수정하여 인화하는 작업 기술을 익혔습니다. 현상 약품의 배합과 인화할 때 빛을 주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은 사진사의 경험이며 기술이었습니다. 사진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필름 수정'이라는 취직 시험을 통과해 능력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얼굴의 점을 없애고, 눈매를 또렷하게 하고, 피부를 뽀얗게 만들어 주었으며, 낮은 코를 높여달라는 요구까지 들어주었습니다. 수정 방법과 능력은 사진사마다 달랐고, 기술이 뛰어난 사진관에는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몰렸습니다.

작업의 기술


에필로그

무거운 촬영 장비를 자전거 한 대에 거뜬히 싣고 온 마을을 다니던 젊은 사진사는 어느덧 여든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흑백에서 컬러로,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변화에 대응하며 오랜 시간 동네 사진관을 지켜왔습니다.
"내가 평생 해 온 일이잖아요. 손님이 오면 '못 합니다' 라는 소리를 못 하겠는거야.
이 동네에는 나밖에 없잖아."

오늘도 사진사는 사진관 문을 엽니다.


우리는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왔습니다. 이 순간들의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고, 사진관은 그 기억과 역사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주요 전시자료

대형 사진기 대형 사진기
20세기, 세로 48 가로 66 높이 144

사진관에서 사용하던 대형 사진기이다. 주름으로 초점을 조절하여 '주름상자 사진기'라고도 했다. 사진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특별한 순간을 찍었다.
의자 의자
20세기, 세로 102 가로 42 높이 69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을 때 자세를 잡기 쉽도록 돕는 의자이다. 1970~1980년대 사진관에서 흔히 사용하던 것으로, 앉은 사람의 설렘과 추억이 거쳐 간 자리이기도 하다.
유리건판필름 유리건판필름
대한제국, 세로 16.4 가로 12

유리건판필름은 1880년대부터 사용된 초기 카메라 필름으로, 유리 위에 젤라틴 유제乳劑를 발라 만들었다. 한 번 사용한 뒤에도 필름 표면의 유제를 없애면 다시 쓸 수 있었다.
천연당사진관의 여성 사진 천연당사진관의 여성 사진
1920년대, 세로 13.2 가로 9, Joseph H. Owens 기증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운영한 영업사진관인 천연당사진관天然堂寫眞館에서 촬영한 초상사진이다.
김교헌 초상 사진 김교헌 초상 사진
일제강점기, 세로 10.5 가로 6.5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을 촬영한 흑백사진으로 한복을 입은 김교헌의 모습이 상반신만 찍혀 있다. 초상화가 사진으로 대체되면서 사진은 점차 대중에게 확산되었다.
이길영과 자녀 사진 이길영과 자녀 사진
일제강점기, 세로 10.3 가로 7.5

이길영과 아이의 모습이 찍혀 있다. 개화기 이후에는 여성과 아이들도 사진기 앞에서 당당하게 주인공이 되었다.
송별 기념사진 송별 기념사진
1906, 세로 12.5 가로 18.2

사진 속 사람들이 들고 있는 액자에는 사진을 찍은 날짜와 이유가 적혀 있다. 1906년 4월 민충식이 해외로 떠나기 전에 친구 김유원, 이민녕, 이익녕과 함께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민충식은 훗날 낙원동 태평양사진관의 주인이 된다.
일생의 특별한 순간을 찍는 사진관 일생의 특별한 순간을 찍는 사진관
1930년대~1970년대

사진관에서는 탄생을 기념하는 순간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거리의 속성, 궤짝사진관 거리의 속성, 궤짝사진관
2010년 재현, 세로 48 가로 87.5 높이 99

궤짝사진관은 각종 증명사진을 10분이면 만들어 주는 거리의 속성 사진관이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피란민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증명서가 필요해지자, 사진사들은 궤짝으로 암실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다.
도별 신분증명의 시작, 도민증 도별 신분증명의 시작, 도민증
1950년대, 세로 9.8 가로 6.2

각 도에서 도민에게 발급한 신분증명서이다. 도민증에 반드시 사진을 붙이게 하자 증명사진 찍기가 사진관의 큰 수입원이 되었다.
바퀴 달린 사진관, 이동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바퀴 달린 사진관, 이동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1960~1970년대,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소장

사진사들은 갖가지 풍경이 그려진 배경판과 자동차, 목마 같은 소품들을 리어카에 싣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동네 사진관의 동네 기록 동네 사진관의 동네 기록
2011, 세로 21 가로 25.5, 개인 소장

동네 사진관은 동네의 변화를 기록하는 역할도 했다. 사진사들은 어릴 적 살던 동네의 모습이나 지붕 개량, 도로 확장 등 마을의 중요한 변화를 사진에 담았다.
사진관에서 출사를 위해 사용한 물건들 사진관에서 출사를 위해 사용한 물건들
1970~1990년대 초반, 개인 소장

출사할 때 가지고 다녔던 카메라, 필름 홀더, 루페, 가방이다.
조명의 변화 조명의 변화
1970~1990년대, 개인 소장

사진사가 초기에 사용한 조명은 화약 조명이다. 마그네슘 가루와 화약탄을 넣고 마찰을 일으키면 펑 터지면서 불꽃이 생기고 연기로 주변이 자욱해졌다. 이후 마그네슘 솜을 넣어 화재 위험을 낮췄고, 솜이 타들어 가며 '퍽' 소리와 함께 빛을 냈다. 1990년대에 등장한 전자식 플래시는 안전하면서도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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