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 전 시 명 : ‘미역과 콘부다시마―바다가 잇는 한일 일상’
◦ 전시기간 : 2019. 10. 2.(수)~2020. 2. 2(일) [122일간]
◦ 전시장소 :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1
◦ 순회전시일정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1 (서울) : 2019. 10. 2 ~ 2020. 2. 2.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일본 자바현) : 2020. 3. 17 ~ 2020. 5. 17 (예정)
◦ 전시목적
한일 해양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 및 근대기 한일 문화 변동 고찰
현대 한국 문화에 대한 자기 성찰 및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 제고
◦ 전시구성
구분 주제 내용으로 구성된 표 - 전시 구성 내용 구분 주 제 내 용 프롤로그
한국 생선가게와 일본 생선가게생선 가게에서 본 바다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해산물을 요리해 먹고 있을까, 서울과 도쿄의 동네 생선가게에서 식탁까지를 영상으로 들여다본다. 1부
바다를 맛보다일상 속의 해산물 소비와 식문화 양국의 일상과 의례에 사용하는 해산물을 살핀다. 이로써 바다가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한일 양국의 해산물 소비 취향과 그 차이를 살필 수 있다. 2부
바다에 살아가다어업 기술어촌과 어민의 신앙 우리의 식문화를 지탱하고 있는 어촌 속으로 들어간다. 어업기술, 어촌신앙으로 바다를 끼고 살아온 양국 어민의 다채로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3부
바다를 건너다어민과 어업 기술의 이동, 일상의 변동 근대 이후 수많은 어민, 기술, 해산물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면서 나타난 식문화와 어업 기술의 전파 및 수용 양상을 조명한다. 에필로그
바다가 잇다맛의 교류와 일상화 한일 어민이 바다를 넘나들며 만들어낸 변화는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일상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일본에서 일본 어민이 잡은 명태가 바다를 건너 한국에서 소비되듯, 현대 양국의 바다는 자국민의 일상뿐 아니라 상대국의 일상도 지탱하고 있다. ◦ 주최 : 국립민속박물관ㆍ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 주요 전시자료: ‘(제주 해녀) 적삼 및 소중이’, ‘청새치 작살 어구’ 등 국가 및 지방 지정문화재 12점을 포함한 ‘해산물 소비 문화,’ ‘어업과 신앙,’ ‘근대 일상 변동’ 관련 자료, 영상, 사진 등 약 450점◦ 전시 해설 안내
- 대상: 관람객 누구나
- 모이는곳: 1층 로비 안내데스크
- 이용요금: 무료
- 접수방법: 현장접수
- 소요시간: 30여분
- 정기해설 및 예약해설 안내
-정기해설
구분, 요일, 해설시간으로 구분하여 보여주는 표 - 전시 해설 시간 구분 기간 요일 해설시간 한국어 2019.10.14. ~ 2019.12.31. 월~금 11:00
- 예약해설: 희망일 3일전까지 전화신청(10명 이상, 02-3704-3129)
- 전시해설 관련 문의: 02-3704-3129
※ 일정은 박물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은 10월 2일(수)부터 2020년 2월 2일(일)까지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관장 구루시마 히로시久留島浩, 이하 역박)과 함께 공동특별전 ‘미역과 콘부다시마- 바다가 잇는 한일 일상’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해산물 소비 문화에서 어업과 신앙, 근대기 일상 변동 등, 바다를 둘러싼 한일 일상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미역과 다시마 채취선인 ‘떼배와 이소부네’를 비롯해, ‘청새치 작살 어구’ 등의 국가 및 지방 지정문화재 12점을 포함한 450여 점의 자료와 영상, 사진 등이 전시된다.

미역과 다시마일어명 콘부는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오래 전부터 일상의 음식으로 친숙한 해초이다. 그러나 의례나 선물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미역이, 일본에서는 다시마가 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다 밑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 길고 검푸른 자태를 흔드는 미역과 다시마는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르고 다르지만 어딘가 많이 닮아 있다. 이 전시는 바로 미역과 다시마처럼 서로 닮았지만, 다른 한일 일상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전시는 바다가 아니라 우리 일상의 동네 생선가게에서 출발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무슨 해산물을 어떻게 먹고 있는 것일까? 매일 지나치면서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동네 생선가게를 통해 꾸밈없는 한일 양국의 일상을 비교해 볼 수 있다.
‘1부 바다를 맛보다’에서는 한일 모두의 일상이 해산물 없이 유지될 수 없음을 다양한 역사 자료를 통해 살펴본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해산물을 먹지 않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한일 양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해산물 종류나 요리 방식이 상이함에도, 해산물은 맛의 기본이 되고, 중요한 의례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필수품이라는 점을 『일본 산해 명물 도회日本山海名物図会』, 헤르만 산더 『풍속화첩風俗畫帖』, <일본 후쿠오카시 히가시구 히로의 설날 장식> 등을 통해 보여준다.
‘2부 바다에서 살아가다’에서는 우리에게 해산물을 가져다주는 한일 어민의 기술과 신앙을 소개한다. 가까운 이웃인 한일 양국 어민의 어업 기술은 얼마나 비슷하며 다를까?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대자연인 바다와 대면해, 어민은 어떠한 마음을 가져왔을까? 막연히 상상해 왔던 한일 어민의 세계를 한일 갯바위 어구 비교, 한국의 갯벌 어업과 일본의 태평양 참치 어업 비교, 한국 어민의 ‘장군 신앙’과 일본 어민의 ‘에비스 신앙’ 비교 등을 통해 깊숙이 들여다본다. 또한, 관람객이 다양한 한일 갯바위 어로 도구를 비교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3부 바다를 건너다’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었지만, 사람과 함께 기술과 문화는 언제나 바다를 건너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온 과정을 조명한다. 여기에서는 <오키나와부터 한반도까지의 해녀 도구>, 한일 어민 간에 맺어진 <향리동 증명서>와 <한국해 출어 에마>, 일본 대어기大漁旗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국 풍어기豐漁旗, 한일 어로요 등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기술과 문화의 전파뿐 아니라, 양국민이 이를 자신의 일상 속에 주체적으로 수용해 나간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일본 해녀가 일본에 온 한국 해녀에게 배워 만든 해녀복 <조센>은 한일 어민의 역동성이 남긴 ‘교류의 증거’로 제시될 것이다.
| 1부. 바다를 맛보다 | |
|---|---|
![]() |
헤르만 산더 『풍속화첩風俗畫帖』 중 「새우졋장사」, 「녀인졋갈장사」
1907년, 슈테판 산더Stefan Sander 기증 20세기 초 헤르만 산더Hermann Sander, 1868~1945가 우리나라의 다양한 풍속과 인물, 기물, 풍경 등을 그린 그림을 모아 엮은 책으로, 당시 젓갈을 파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볏단으로 만든 아이들의 공놀이 도구로, 매우 보기 드문 자료이다. |
![]() |
[일본 후쿠오카시 히가시구 히로의 설날 장식] 20세기, 일본 후쿠오카시박물관 소장 정월에 집을 방문하는 신을 모시기 위한 장식으로, 일본 시코쿠, 규슈 지방에서 많이 사용한다. 삼치, 말린 오징어, 다시마 등을 소나무에 매달고, 그 아래에 쌀을 넣은 가마니를 놓아 장식한다. |
| 2부. 바다에서 살아가다 | |
| 한일 갯바위 도구 | |
![]() |
![]() |
| 강원 강릉 동명마을의 미역 채취 | 일본 홋카이도 하코다테시 다시마 채취 |
![]() |
![]() |
| [강릉 정동진의 떼배와 낫대] 20세기 말, 최재용 소장 강원 강릉 정동진에서 미역 채취에 사용하던 배와 낫대이다. 배 위에서 수경으로 바닷속 미역의 위치를 살핀 후에 낫대를 넣어 미역의 밑을 베어 걷어 올린다. 동해안에서 떼배는 전복, 해삼 채취에 사용되기도 하지만, 보통 미역 채취에만 사용되었다. |
[아오모리현 시모기타군 이소부네] 20세기, 개인 소장 아오모리현 시모기타군 히가시도리무라 시라누카青森県 下北郡 東通村 白糠에서는 지금도 ‘이소부네’라고 부르는 목조선을 사용해 어업을 한다. 이 배는 ‘구루마가이’라고 불리는 한 쌍의 노로 젓는다. 어부는 배에서 ‘가라스’로 바닷속을 들여다보며 ‘구렌카이’라는 도구로 다시마를 비틀어 딴다. |
| 한국의 갯벌 어업과 일본의 갯벌 어업 | |
![]() |
![]() |
| [낙지잡이백마리] 20세기 초 전남 목포 지역에서 낙지를 잡아 임시로 보관하거나 운반하는 데 사용했던 어구이다. 낙지 백 마리가 들어간다고 해 ‘낙지잡이백마리’ 혹은 ‘낙지조락’이라고 한다. |
[고지마만 어로도児島湾漁撈回漕図’] 복제품, 1798년, 원본 온사키 신사御前神社 소장 1798년경 일본 오카야마현 고지마만의 갯벌 어업을 그린 봉납 그림이다. 뻘배, 뱀장어 어구, 정치망 어업, 들망 등을 볼 수 있다. 현재 고지마만은 대부분 매립되어 농지로 바뀌었다. |
| 일본의 태평양 참치 어업 | |
![]() |
![]() |
| [봉납용 건절망 그림]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원본 가나자쿠라 신사金桜神社 소장) 일본 시즈오카현 누마즈시 에노우라만静岡県 沼津市江浦湾에 들어온 다랑어를 그물로 둘러싸 포획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1907년에 봉납되었다. 당시에는 다랑어가 해안 가까이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
[청새치 작살 어구] 20세기, 일본 다테야마시립박물관, 국가 지정 중요유형민속문화재 바다 표면을 헤엄쳐 다니는 청새치를 쫓아 찔러 잡는 어구이다. 지바현 남부의 보소 반도千葉県 房総半島에서는 녹새치, 돛새치, 황새치 등 다양한 청새치를 작살로 잡는다. 작살이 청새치에 명중하면 줄이 묶여있는 작살 끝만 장대에서 떨어져 나간다. |
| (한국) 용왕에게 보내는 띠배와 (일본) 용궁을 그린 풍어복, 마이와이 | |
![]() |
![]() |
| [띠배] 21세기 전북 부안 위도 대리 마을제에 사용하는 의식용 배이다. 마을제의 마지막 절차에 띠배를 바다로 띄워 보낸다. 음식과 허수아비를 함께 실어 보내기에 용왕에게 공물을 바친다는 의미와 함께, 마을의 모든 재액災厄을 띠배에 실어 보낸다는 의미도 있다. |
[마이와이(용궁)] 20세기, 일본 다테야마시립박물관, 국가 지정 중요유형민속문화재 풍어 때 배 주인이 어부 등 관계자에게 나누어주는 축하복이다. 19세기에 지바현 보소 반도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용궁을 비롯해 경사스럽고 길한 그림이 염색된다. |
| 장군신과 에비스신 | |
![]() |
![]() |
| [장군기] 20세기 한 손에 칼을 들고 말을 탄 장수의 모습을 그린 깃발로, 장수는 황해도에 뿌리를 둔 인천 ‘배연신굿배靈神굿’에 사용하는 임경업 장군林慶業, 1594~1646이다. 인천 옹진 연평도에는 임경업 사당이 있는데, 조기를 잡으러 연평도에 온 각지의 어민들은 어업을 시작하기 전에 임경업 사당 근방에서 고사를 지냈다. |
[에비스마와시] 20세기,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에비스마와시는 정월에 집마다 돌아다니며 한해 동안의 행복을 축복하는 의례이다. 에비스마와시의 공연자는 에비스 나무 인형을 가지고 집마다 돌며 일종의 지신밟기를 하며, 어부는 에비스마와시를 불러서 한 해 동안 풍어를 기원한다. |
| 한국의 당산제와 일본의 마쓰리 | |
![]() |
![]() |
| 제주 추자면 대서리의 마을제는 음력 섣달 그믐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 이루어진다. 풍어와 관련해, 물고기를 부르는 ‘고기 부르기’ 제의나 최영 장군崔瑩, 1316~1388의 신적 역할이 강조된다. 바다에서 죽은 조상과 용왕에게 올리는 ‘헌석제’는 남해안에서 많이 보이는 제의 형태로, 설과 대보름 두 차례에 걸쳐 성대하게 이루어진다. 포수들이 주고받는 익살스러운 만담이 마을제의 백미이다. | 사다 신사佐田神社 마쓰리는 일본 시코쿠四国의 동쪽 끝에 있는 도쿠시마현 아난시 쓰바키도마리徳島県阿南市椿泊에서 9월 둘째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거행된다. 주민들은 사다 신사를 출발한 ‘신을 옮기는 가마神輿’를 메고 지구별로 정해진 장소에 멈춰 기원과 휴식을 반복하며 마을을 돈다. ‘신의 뜻’에 따라 가마가 바다로 들어가는 일도 있다. |
| 제3부 바다를 건너다 | |
![]() |
|
| (왼쪽) 미카간, 20세기,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일본 오키나와현 다케토미섬沖縄県竹富島에서 사용된 목제 물안경이다. (중간) 물안경, 20세기,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일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石川県 輪島市 해녀의 물안경 (오른쪽) 족쉐눈, 1960년대, 해녀박물관,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10호 해녀가 잠수할 때 꼈던 물안경이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물안경은 19세기 말 일본 오키나와 이토만 지역 어민이 이 지역의 독특한 어법수중에서 물고기를 그물 안으로 몰아 잡는 방법을 고안하던 중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중안경은 일본의 해녀 조업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한반도에 온 일본인을 통해 제주 해녀에게도 전해진다. 수중안경의 도입으로 조업 효율이 크게 향상되었다. |
|
| 한국의 해녀복과 일본의 조센 | |
![]() |
![]() |
![]() |
![]() |
| [적삼과 소중이] 20세기,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제주도 서귀포 법환리에서 입던 해녀옷이다. 상의인 적삼은 한복의 적삼을 본뜬 형태이나 단추로 여며 입는다. 하의인 소중이는 어깨끈을 달아 좀 더 편리하게 만들었다. 보통 집에서 짠 무명을 사용했지만, 이 자료는 광목을 사용했다. |
[조센] 20세기, 일본 다테야마시립박물관, 국가 지정 중요유형민속문화재 일본 지바현 지구라마치千葉県 千倉町 해녀가 입었던 옷이다. 하의는 제주 해녀의 ‘물소중이’를 따라 지은 것이고, 상의는 일본식 ‘갯바위복’이다.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
![]() |
[일본산해명물도회日本山海名物図会] 1754년, 개인 소장 18세기 히라세 뎃사이平瀬徹齋가 일본 각지의 명산품을 삽화와 함께 해설한 책이다. 홋카이도 최남단 마쓰마에 지방의 다시마 어업과 다시마 건조 모습이 소개되어 있다. |
![]() |
[유취잡요초(권 제1하)類聚雑要抄(巻第一下)] 12세기,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12세기 궁중 행사에 관한 책으로, 책에는 대향大饗이라고 불리는 의식 요리가 그려져 있다. 그림에는 꿩 내장젓갈이나 해파리젓갈, 멍게젓갈, 개불젓갈이 보이고 젓갈에 요리를 버무려 먹은 것으로 보인다. |
![]() |
|
| [해남윤씨 상속문서] 1908년, 재단법인 녹우당 윤형식 소장 전남 해남 해남윤씨의 상속문서이다. 해남 연동리 윤주형이 맹골도 등에 있는 집안 제사를 위한 장토庄土를 종손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로, 섬의 호수, 전, 결, 미역밭의 현황을 기재한 뒤 관련 그림을 붙였다. |
|
|
|
| [향리동 증명서] 1909년, 경남 거제시 구조라리 마을회 소장 일본인과 조선인이 맺은 서약서이다. 1896년 시코쿠 에히메현 우오시마愛媛県 魚島 어민이 경남 거제에 멸치 가공 시설을 무단으로 설치하려고 하면서 갈등이 발생하자 다섯 가지 내용을 서로 서약하였다. 첫째, 길에서 여자들에게 음담패설을 하지 말 것 둘째, 어업을 통해 서로 상업할 것 셋째, 마을 앞에서 옷을 벗지 말 것 넷째,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싸우지 말 것 다섯째, 소와 개를 해치지 말 것을 약속했다. 특히, 일본인이 부녀자 앞이나 동네 근처에서 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일은 다른 지역에서도 갈등의 원인이었다. |
|

제1부'바다를 맛보다' 전시장

제2부 '바다에서 살아가다' 전시장 전반부

제2부 '바다에서 살아가다' 전시장 후반부

제3부'바다를 건너다' 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