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달인 동지는 24절기 중 스물두번째 절기로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 곧 황경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양력으로 동지가 음력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우리민족은 이처럼 태양력인 동지에 태음력을 입혀 태음태양력으로 세시풍속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하였다.
옛부터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꼬리만큼 길어진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는 태양이 동짓날을 출발점 삼아 봄으로 향하는 천분학적인 형상을 두고 생겨난 말이다.
동지는 겨울에 접어들었다는 뜻 말고도 다양한 의미로 불리우는데, 동짓날 신발 그림자가 가장 길어진다 하여 이장, 해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하여 장지라고 불렸는데, 이는 태양의 부활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동지를 아세 또는 작은설이라고도 하였다.
당나라 역법책인 선명력에는 과거 중국에서도 동짓날을 일년의 시작 설로 삼은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데, 당시 중국의 선명력을 사용했던 우리나라도 충선왕 이전까지는 동지는 설로 지낸것으로 짐작된다.
동국세시기에 관상감에서 장식한 색깔에 따라 황장력 청장력 백장력으로 구분해 제작한 새해 달력을 궁에 바쳤는데, 나라에서는 이책을 동문지보란 어새를 찍어 동문백감들에게 나눠주었고 관원들은 이 달력을 친지들에게 나눠주며 동지를 축하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자막>관상감(觀象監)에서는 임금에게 역서(曆書)를 올린다. 그러면 임금은 모든 관원들에게 황색표지를 한 황장력(黃粧曆)과 백색표지를 한 백장력(白粧曆)을 반포하는데 '동문지보(同文之寶)'란 네자가
새겨진 옥새(玉璽)를 찍는다. 각 관서에서도 모두 분배받는 몫이 있다. 이 날은 각 관서의 아전들이 각기 친한 사람을 두루 문안하는 것이 관례다.
이것을 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이라 했다.
이는 여름이 오기전에 부채를 선물하고 겨울에 책력 즉 달력을 주어 새해 농사준비를 할 수 있게 한다는 뜻으로 요즘 동지무렵인 연말연시에 새해 달력을 주고받는 풍속과 같은 것으로 당시 농경본위의 사회에서 달력의 중요성을 알 수있다.
<자막>하선동력(夏扇冬曆)- 여름의 부채와 겨울의 새해 책력이라는 뜻으로 선사하는 물건이 철에 들어맞음을 이르는 말
<자막>경진력대통력(庚辰年大統曆)- 달의 크기변화와 일진(日辰) 24절기의 입기(入氣) 시각을 추산하여 적어 놓은 달력으로서 경진년인 1580년(宣祖 13)에 현재의 기상청에 해당하는 관상감(觀象監)에서 인출(引出)
또한 동지 아침에 조정 대신들과 관리들이 왕에게 축가인사를 올리는 동지하례를 행했고 또 왕실에 사단인 종묘에 청어를 올렸다.
<자막>동지하례(冬至賀禮) -동지 아침에 조정 대신들과 관리들이 왕에게 올리는 축하 인사로 동지조하(冬至朝賀)라고도 한다.
청어의 푸른빛이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라 여겼던 것인데, 궁중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사대부집안에서도 청어를 사당에 올리는 일이 있었고 이를 청어천신이라 한다.
<자막>청어천신(靑魚薦新) -겨울과 봄에 새로 난 청어를 조상에게 올리는 의례로 주로 궁중과 양반가에서 행한 풍속
한편 민간에서는 동지부적이라하여 뱀사자를 써서 거꾸로 붙여 잡귀를 막는 속신이 있었다.
또한 동짓날에는 엄동설한에 무명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버선을 만들어 선물하였는데, 이를 동지헌말이라고 한다.
실학자 이익이 새버선 신고 이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라고 했던 동지헌말은 풍년을 빌고 다산을 빈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동짓날에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동짓팥죽이다.
동짓팥죽은 새알심을 넣어 끓이는데, 가족의 나이수대로 넣어 끓이는 풍습도 있다.
그래서 작은설인 동지에 팥죽을 먹어야 한살 더먹는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다 만든 팥죽은 먹기전에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를 지내고 각방과 장독, 헛간같은 곳의 집안의 여러곳에 놓아두는가 하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 벽에 뿌리기도했다.
이는 팥의 붉은색이 집안의 악귀를 쫓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막>동지고사(冬至告祀)- 동짓날에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려 잡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행하는 고사, 지역에 따라 팥죽제, 동지차례 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풍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요즘도 팥떡을 해서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풍습은 단순한 주술적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이면에는 동짓팥죽과 버선 한켤레의 온기속에 담긴 우리 조상들의 더불어 살려는 나눔의 정신이 자리를 잡고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련과 고난의 계절 겨울절기인 동지는 우리 선조들에게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