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6년 개항과 함께 서구로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신문물(新文物)은 전통과 커다란 충돌을 일으키면서 민중들의 일상생활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새로운 사상은 민중들의 의식을 변화시켰고, 신문물은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특히 외국상품들로 대표되는 석유, 전기, 축음기, 성냥, 담배, 염료, 양초, 시계, 램프, 직물, 바늘, 화장품 등의 이들 상품들은 대중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변화와 변모를 가져다주었다. 이들 상품들은 대중에게 편리함과 새로움으로 다가와 이전 시대와는 다른 시대 즉 근대를 상징하는 물질문명으로 인식되었다. 근대물질문명과 과학 기술은 서서히 대중들의 일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였으며, 대중들의 근대로의 이행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일제강점기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일상(日常)에 대한 변화의 바람은 삶의 여러 곳에서 개조(改造)의 형태로 구체화되었으며, 대중들의 삶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기차와 철도는 근대적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내었고, 위생과 청결은 질병의 고통을 덜어주었으며, 새롭고 진기한 음식과 조미료는 전통적인 입맛마저 바꾸어 놓았다. 거리에는 축음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맥고모자, 양복, 양장, 양화, 화장품 등 상품들이 넘쳐흘렀으며 그렇게 대중의 일상적 삶은 재구성되었다.
개항과 더불어 유입된 외국 화장품들은 주로 상류계층에서 애용되었는데, 1920년대에는 일반 여성들에게까지 보급되었다. 서양제 및 일본제 화장품의 보급에 자극을 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인 ‘박가분(朴家粉)’이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이밖에 포마드, 로션, 크림, 향수, 비누 등도 수입되었는데, 이들 화장품들은 기존 상품에 비해 포장이 화려하고 사용법 또한 간편해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화장품 선택법, 보관법, 자가 제조법, 흰 피부 가꾸기, 화장법 등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 이 시기 미(美)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화장(化粧)의 유행을 읽을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농민층의 성장과 경제발전으로 신분질서가 무너지면서 서민들의 의식이 성장하게 되었다. 이는 문화의 저변이 확대되는 토대가 되었다. 고려청자가 특정계층이 향유한 자기라면,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는 전 계층의 소박함을 담고 있는 자기이다. 고려와 조선에 걸쳐 꾸준히 제작된 도기는 서민문t화를 대표한다. 특히 17세기 후반부터 철화백자와 함께 제작되기 시작한 석간주는 조선후기의 문화적인 개성을 잘 보여준다. 서민들의 삶을 소재로 한 풍속화가 그려지고 부를 축적한 중소 부민층이나 일정한 경제력을 가진 서민층을 중심으로 생활공간을 장식하는 민화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18세기 이후에는 민간의 종이 생산과 수요가 증가하면서 서책 간행, 서화, 문서 작성 등의 용도 외에 다른 용도로 종이가 사용되었다. 종이를 활용한 기물들이 제작되면서 수공예 분야가 한층 다양해졌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일본에서 전래된 담배는 중요한 상품작물로 등장하여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20세기 후반은 새롭고 역동적인 삶을 요구한 시기였다. 해방(1945) 당시 45달러에 불과했던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이르는 경제규모로 성장하기까지 한국인들이 쏟은 근검과 절약의 정신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재건과 성장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후유증이 적지 않았지만, 대중들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함께 개방과 실용정신이 중시되는 사회를 만들어갔고 디지털문화의 발달로 일상을 새롭게 변화시켜 갔다. 생활환경을 비롯하여 대중문화의 전반이 발달하면서 동서양과 신구(新舊) 문화의 다양성 속에 또 다른 삶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주택은 안채, 사랑채, 대청마루로 구성되는 전통가옥에서 서양식의 주택, 아파트, 빌라 등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19세기 말 이래 서양식과 일본식 주택이 들어오면서 주택의 변화를 이끌어 도시형 한옥, 문화주택, 영단(營團)주택 등 새로운 유형의 주택이 지어졌다. 그와 동시에 수도가 집안으로 들어오고, 대청이 다양한 생활용도로 활용되고, 화장실이 욕실과 함께 내부로 들어오는 등 새로운 주거문화를 만들어냈다. 해방 후 근대화의 상징이자 생활개선을 위해 아파트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널리 보급되면서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주거문화로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 여성들의 공간인 부엌은 독립된 공간에 조리와 난방을 주된 기능으로 하던 전통적 부엌에서 오늘날 초현대식 아파트의 시스템키친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20세기 중반부터 연탄이 보급되면서 아궁이의 구조가 바뀌었다. 식기도 기존의 놋그릇 대신 양은이나 스테인리스로 대체되었다. 석유와 가스의 보급은 부엌을 또 한번 변화시켰다. 1960년대 이후 아파트를 중심으로 실내로 들어온 입식부엌은 취사와 난방을 분리시키면서 거실과 접한 주방으로 변화하였고, 다양한 전자제품으로 부엌의 기능은 실용화, 현대화되어 가고 있다.

이 영상에는 한국 사람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은 역사 속 위인도 아니고 이 시대의 유명인사도 아닌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다. 역사는 바로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이어져왔다. 여기 이 모습들이 우리의 어제이고 오늘인 동시에 내일을 이끌어갈 주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