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INFO 전시마당

고려시대 ~ 조선시대

문화의 향유 전시장 전경
문화의 향유 전시장 위치는 출입구에서 네번째 블럭

전시장 위치

고려의 후삼국 통일과 역성혁명에 의한 조선의 건국은 명실상부한 민족의 통일을 토대로 역사를 발전시켰다. 국가의 기본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은 유교는 정치와 사회윤리로서, 일반 서민들의 종교생활을 지배한 불교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적인 기둥이었다. 국왕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제의 강화는 과거제를 바탕으로 한 관료제의 정착과 발전, 지방제도의 정비에 따라 이루어졌다. 국가의 안정적인 지배기반 위에서 인쇄문화의 발전은 국가와 사회의 안녕에 대한 기원을 담아내면서 지식의 확산에 기여하였으며, 한글의 창제와 보급은 자신의 생각과 뜻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됨으로써 서민들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 후기 농업 및 상업, 수공업의 발달에 따른 농업생산력과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은 신분제의 변동과 서민들의 의식 성장을 가져왔다. 그만큼 서민들은 문화를 접할 기회가 확대되면서 자신들의 정서를 생활 속에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민(民)의 뜻을 표방하다

경직도현실사회에서 이상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던 유교 중심의 국가 이념은 천문 및 과학기술 관련 자료에 반영되어 있다. 천명을 받은 국왕은 하늘의 역할을 대신하여 이에 따라 하늘에 부합하는 정치를 펼쳐야 한다. 그 출발점은 하늘의 변화를 끊임없이 살피는 일이다. 천문도의 제작은 새로 출범한 왕조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것임을 공표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의 지지를 얻어내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였다. 앙부일구는 공중 시계로서 백성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 설치되었고,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시각을 표시했다. 이는 백성을 근본에 두는 정치를 하겠다는 정신의 표명이다. 이러한 민본정치이념은 농업중심사회에서 지배층으로 하여금 농사의 어려움을 알게 하여 좋은 정치를 베풀도록 하는 역할을 했던 경직도에서도 드러난다. 농업생산력 증대를 위해 수리관개공사를 추진하는 한편 비에 대한 관측을 위해 제작된 측우기 역시 그 바탕에는 농업을 중시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지식의 확산

문자에 담긴 염원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우리나라의 인쇄술은 통일신라시대 이후 불교 경전이 보급되는 과정에서 발전하였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으로 석가탑(751년 조성)이 세워지기 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대장경의 간행으로 목판인쇄가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기 위해 시작된 팔만대장경 조판은 기술적으로도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다. 목판인쇄의 한계와 금속공예기술의 발전에 따라 고려 고종 21년(1234)에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 50권을 금속활자로 찍었으며, 우왕 3년(1377)에 간행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전기에는 계미자(癸未字, 1403), 경자자(庚子字, 1420), 갑인자(甲寅字, 1434) 등을 주조하면서 금속활자 인쇄술의 완성을 이룩하였다.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전과 조선 후기까지 계승된 목판 인쇄술의 전통은 유교문화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訓民正音)

훈민정음(訓民正音)조선 제 4대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은 백성들이 말v은 할 수 있어도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세종 25년(1443) 12월에 우리의 고유문자이며 표음문자인 한글을 만들고, 28년(1446)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한글은 17자의 자음과 11자의 모음인 28자로 구성되어 있다. 만든 목적이 분명하고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가 분명한 글자는 한글이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한글 창제와 반포에 대해 당시에는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세종은 한글로 된 최초의 노래인 ‘용비어천가’를 짓는 등 한글의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활용하도록 하였다. 한글이 점차 보급되면서 서민들은 생각과 뜻을 글로 적을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민원 해소, 농업기술의 전수, 친지간 편지 왕래 등 일상생활에서 한글이 활용되었으며 서민들의 생활 개선과 의식 성장을 가져왔다.

생활의 재발견 생활 속에 깃든 예술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조선 후기에는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난다. 농민층의 성장과 경제발전으로 신분질서가 무너지면서 서민들의 의식이 성장하게 되었다. 이는 문화의 저변이 확대되는 토대가 되었다. 고려청자가 특정계층이 향유한 자기라면, 조선의 분청사기와 백자는 전 계층의 소박함을 담고 있는 자기이다. 고려와 조선에 걸쳐 꾸준히 제작된 도기는 서민문화를 대표한다. 특히 17세기 후반부터 철화백자와 함께 제작되기 시작한 석간주는 조선후기의 문화적인 개성을 잘 보여준다. 서민들의 삶을 소재로 한 풍속화가 그려지고 부를 축적한 중소 부민층이나 일정한 경제력을 가진 서민층을 중심으로 생활공간을 장식하는 민화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18세기 이후에는 민간의 종이 생산과 수요가 증가하면서 서책 간행, 서화, 문서 작성 등의 용도 외에 다른 용도로 종이가 사용되었다. 종이를 활용한 기물들이 제작되면서 수공예 분야가 한층 다양해졌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일본에서 전래된 담배는 중요한 상품작물로 등장하여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흙으로 빚은 그릇에 담긴 삶

백자도자기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에는 시간적인 흐름과 함께한 사회 변화가 반영되어 있다. 고온에서 구워낼 수 있는 가마의 사용은 토기에서 도기, 자기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고려시대는 실생활에 적극 활용된 도기의 생산과 동시에 자기의 생산도 본격화 되었다. 왕실이나 귀족중심으로 사용되었던 고려청자는 다양한 형태와 비취색으로 대표되며 순청자시기를 거쳐 상감청자시기(12~13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청자의 뒤를 이어 분청사기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어 15~16세기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더불어 검소하고 실용적인 유교적 분위기를 반영했던 백자가 완성되었다. 순백자, 청화백자, 철화백자, 진사백자 등 다양한 백자가 만들어지고 후기에는 생산량이 증가하여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저장과 발효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질그릇(옹기)도 다양한 형태와 기법의 변화를 보이며 우리의 오랜 도기전통의 한 축으로 자기의 발전과 함께해 왔다.

나무가 준 선물, 종이

종이 공예품18세기 이후에는 민간의 종이 생산이 크게 늘면서 생활 곳곳에서 종이를 폭넓게 사용하게 되었다. 서책 간행, 문서 작성, 서화(書畵) 등의 용도 외에 다른 용도로 종이가 활용되었던 것이다. 전시된 자료들은 종이로 만든 공예품들이다. 먼저 의복이나 소품, 문서 등을 보관하는 지함과 화초함은 나무로 만든 몸체 위에 종이를 발라 옻칠이나 기름칠로 마무리한 것이다. 이 밖에도 종이를 꼬아 엮어 만든 지승공예품(紙繩工藝品)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에는 지승공예기법으로 작은 그릇뿐 아니라 큰 세숫대야까지도 만들어 썼을 만큼, 종이를 재료로 튼튼하고 실용적인 생활용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생활 속의 그림

민화 전시관 전경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진 조선후기에는 왕실이나 양반들이 주로 접했던 회화작품에도 서민들의 관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다양한 계층의 생활을 묘사한 풍속화가 많이 그려졌을 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 가운데 부유층이 생겨나면서 생활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민화들도 많이 제작되었다. 병풍이나 가구를 비롯하여 생활공간 곳곳을 장식한 민화는 서민들의 정서를 담는 대중문화로 발전해 나갔다.

새로운 기호품, 담배

담배합담배는 17세기 초 일본을 통해 처음 전래되었다고 한다. 전시된 담배합들은 단순한 형태부터 화려한 장식이 더해진 것까지 매우 다양한데, 이는 당시 담배가 신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피울 수 있는 기호품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담뱃대의 길이가 신분의 높낮이를 보여준다는 말과 같이, 나중에는 서민들이 담배 피우는 것을 제한하였다. 한편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담배는 조선후기 중요한 상품작물로 등장하고, 담배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해서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