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사람들 손에 잡히지 않으려고 돼지는 이리저리 도망을 쳐보지만 마을 사람들 손에 여지없이 잡히고 만다. 부산리의 마을 제사에 제물로 쓰일 돼지는 교미 경험이 없는 수퇘지여야 한다. 충청도의 첩첩산중에 자리 잡고 있는 부산리 마을, 이곳에서는 밭농사 수확 시기인 음력 7월에 마을 제사를 지낸다. 수확의 기쁨을 신에게 돌리고 주민들이 함께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마을 제사를 올린다. 제관은 제사를 앞두고 한지를 끼워 넣은 금줄을 자신의 집에 치기 시작한다. 부정한 기운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마을 제사를 앞두고 제관의 아내는 제사에 쓰일 술을 빚어야 한다. 신령주라고 불리는 이 술은 쌀로 밥을 짓고 누룩을 섞어 만든다. 신령주가 다 빚어지면 제관은 술동이를 지게에 싣고 서둘러 입산한다. 산제당 아래에 있는 당산나무 밑둥에 신령주를 먼저 묻는다. 산제당 제사를 지내고 난 후 당산제를 지낼 때 올리려고 미리 묻어두는 것이다. 제사 전날 제관은 경건한 마음으로 산제당 청소를 한다. 제사에 쓰일 젓가락은 특이하게도 억새풀로 만든 것을 쓰는데, 잘 자란 억새를 골라 신에게 드릴 젓가락을 미리 만들어 둔다. 산제를 올리는 날, 산제당에 이른 제관과 축관은 제당 시렁 위에 한지를 깔고 촛불과 향을 피운다. 안에서 제의 준비를 하는 동안 밖에서는 제사에 올릴 젯밥인 메를 익히느라 화톳불을 피우고 있다. 메가 다 익으면 산제 샘에서 길러 온 맑은 청수 한 그릇을 메와 함께 올려 진설한다. 밥과 물 한 그릇이 제수의 전부다. 밥과 물과 억새 젓가락, 제사상치고는 너무 소박하지만 어쩐지 자연인 산신에게 어울리는 진설인 것 같기도 하다. 다섯 번의 절을 올리고 난 뒤 의례의 마지막 순서로 소지를 올린다. 제사에 올린 청수를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신다. 산제당에서의 제사를 마치면 곧바로 제당 아래 당산으로 내려와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나무 아래 미리 묻어 둔 술을 당산제 제주로 쓴다. 수 백 년 된 느릅나무와 돌배나무가 마을 당산목이었으나 수 십 년 전 두 나무가 차례로 고사해버려서 지금은 4년 전에 심어진 작은 나무를 당산 나무로 모시고 있다. 작은 당산 목이지만 마을 사람들에겐 그래도 영험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당산제에서는 돼지 머리와 통북어 대추, 밤 등과 함께 신령주가 올려진다. 당산제에서는 모두 세 번의 절을 하는데, 산신과 물신과 하늘신에 올리는 절이라고 한다. 당산제에 올린 신령주를 마시면 그 해 운수가 대통하고 무병하다고 해서 마을의 상노인이 아니면 좀처럼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 무렵 제관의 집 마당에서는 떡시루에 김이 한창 오르고 있다. 마을 앞 서낭당에 올릴 백설기를 찌고 있는 중이다. 마을 앞 서낭당 나무에 올리는 동고사는 온갖 잡신과 돌림병을 막기 위한 제의다. 백설기를 시루채 올려놓고 시루 속에 청수 한 그릇을 떠 놓는다. 서낭당에 진설된 떡을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고 공부를 잘한다고 하여 과거에는 동고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달려들어 떡을 떼어 가져갔다고 한다. 산제, 당산제를 거친 부산리 동제는 마을 어귀 서낭당 동고사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마을 제사를 모두 마치고 제관의 집에 모인 주민들은 흥겨운 뒷풀이로 농사의 고단함을 풀고 이웃간의 정을 나눈다. 부산리의 동제는 겨우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형편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 삶 속에 이어져 오고 있는 작은 산골 축제를 아름답게 계승해 나갈 방법은 없는 지 생각해 볼 때다.